파라마운트, WBD 적대적 M&A 추진…글로벌 미디어 판도, 2026년을 앞두고 ‘3개 전략축’으로

오늘(미국 현지 시각 ) 파라마운트가 예상 밖의 WBD 적대적 M&A(Hostile Takeover)를 공식 선언하며 WBD 인수 경쟁이 다시 급격히 달아올랐다.  

미디어 산업은 2026년을 앞두고 구조적 변곡점을 맞고 있다. 넷플릭스의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WBD) 인수 추진이 산업 전반을 흔든 데 이어, 파라마운트가 적대적 M&A를 발표하면서 경쟁 구도가 다시 재편되고 있다. 반면 FOX는 M&A 비개입 전략을 분명히 하며 스트리밍·스포츠·뉴스 중심 포트폴리오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세 기업이 보여주는 전략적 차이는 2026년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중장기 레이어를 가늠하게 하는 핵심 시그널로 평가된다.

파라마운트의 ‘30달러 전략’… 할리우드에 다시 등장한 적대적 M&A

지난주 넷플릭스와 WBD가 인수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시장은 이번 거래가 “사실상 성사 단계(fait accompli)”에 들어갔다고 봤다. 그러나 파라마운트가 예상을 깨고 주당 30달러의 적대적 인수 제안을 공개하며 판을 뒤집었다.

파라마운트가 제시한 주당 30달러는 WBD의 9월 10일 기준 주가 대비 약 140%에 달하는 초고액 프리미엄이다. 파라마운트 CEO 데이비드 엘리슨은 이 가격에 대해 “프리미엄이 모든 메시지를 대신한다”고 말하며, 금액 자체가 인수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과감한 가격 제시는 단순한 기업 간 경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할리우드 내부에서는 이번 움직임이 넷플릭스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산업·정치적 이해관계가 결합된 결과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파라마운트의 제안은 단순한 인수전이 아니라, 스트리밍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미디어 시장의 권력 지형에 변화를 시도하려는 전략적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WBD가 포이즌필(poison pill, 신주인수권 방어전략)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파라마운트의 핵심 공략 지점이다. WBD는 주주 20% 동의만으로 특별주총을 소집할 수 있어, 파라마운트가 주주 설득전에 돌입할 경우 경영권 전환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

포이즌필 공방의 역사… 할리우드 구조조정의 ‘보이지 않는 규칙’

할리우드에서 포이즌필(poison pill)은 전통적인 방어 도구로 자리 잡아 왔다.
2010년에는 라이온스게이트(Lionsgate)가 투자자 칼 아이칸(Carl Icahn)의 적대적 인수 시도에 직면했으나, 포이즌필(poison pill) 전략을 발동해 경영권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2022년에는 미국 지역신문사 리 엔터프라이즈(Lee Enterprises)가 헤지펀드 알든 글로벌 캐피털(Alden Global Capital)의 인수 공세를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방어 전략을 가동해 공격을 저지했다. 2023년에는 스크립스(Scripps)가 신시내어 브로드캐스팅(Sinclair Broadcasting)이 인수 움직임을 보이자 즉시 단기 권리계획(limited-duration shareholder rights plan)을 도입하며 초기 단계에서 접근을 차단한 바 있다.

그러나 WBD는 현재 해당 정책이 부재하다. 이는 파라마운트가 “자본력과 프리미엄”을 통해 경영권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구조적 여지를 제공한다.

파라마운트의 적대적 M&A 배경에는 실리콘밸리 자본도 놓여 있다. CEO 데이비드 엘리슨의 부친인 오라클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2000년대 피플소프트 인수전에서 여섯 차례 시도 끝에 적대적 M&A에 성공한 전례가 있다.

미디어 제국을 꿈꾸는 래리 엘리슨(좌), 데이비드 엘리슨(우)

내실 강화 전략을 선택한 FOX… “인수합병 필요 없다” 전략 선언

같은 시간, FOX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택했다. UBS 2025 글로벌 미디어·통신 콘퍼런스에서 CFO 스티브 톰식은 “우리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We want for nothing)”며 단기 M&A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했다.

FOX는 대형 인수합병보다는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회사는 스포츠와 뉴스 중심의 핵심 사업 구조를 더욱 고도화하는 동시에, 스트리밍 플랫폼인 FOX One을 적극 확장하며 자체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아마존(Amazon), ESPN, 버라이즌(Verizon)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빅테크 번들링 전략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적 지표에서도 FOX는 안정성과 성장세를 동시에 강조한다. 2025 회계연도 기준 FOX의 총 시청 시간은 2조 분량(2 trillion minutes)에 달하며, FOX News는 새롭게 확보한 광고주가 350곳을 넘어섰다. 2026 회계연도 1분기에는 광고 매출이 27% 증가했고, 이용자 참여도 역시 18% 늘어 꾸준한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은 FOX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초대형 M&A 경쟁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회사는 이미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으며, 높은 불확실성이 수반되는 스튜디오 인수전에 굳이 뛰어들지 않아도 되는 재무적·전략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FOX가 선택한 ‘내실 강화 전략’은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일수록 더욱 유효한 움직임으로 평가되고 있다.

It's all on FOX ONE

글로벌 미디어 전략의 분기: 통합 vs 번들 vs 집중

넷플릭스, 파라마운트, FOX가 각각 내놓은 상반된 전략은 글로벌 미디어 산업이 구조적 재편 국면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산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첫째는 초대형 M&A를 중심으로 한 통합 축이다. 넷플릭스와 WBD, 그리고 파라마운트와 WBD 사이에서 전개되는 인수전은 콘텐츠 IP, 스튜디오 인프라, 글로벌 유통망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내려는 수직계열화 경쟁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스트리밍 시장이 포화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대형 스튜디오와 라이브러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압박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둘째는 FOX가 선택한 고정 수요 기반 중심의 보수적 강화 전략이다. FOX는 스포츠와 뉴스라는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핵심 영역에 집중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기존 캐시카우 사업의 수익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불확실성이 큰 스튜디오 M&A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 유지가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셋째는 스트리밍 생태계 전반에서 번들링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 채널을 비롯해 ESPN·FOX·워너가 논의 중인 스포츠 JV(조인트벤처)까지 등장하며, 플랫폼 간 협력이 경쟁의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슈퍼 번들’을 통해 구독 피로감이 커진 이용자들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이는 스트리밍 시장이 단일 플랫폼 경쟁에서 다중 서비스 통합 경쟁 시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서로 다른 전략적 선택을 내리고 있음에도, 이들의 방향성은 모두 2026년 이후 시장 재편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한다. 초대형 M&A, 핵심 포트폴리오 강화, 번들링 경쟁이 동시에 전개되는 다층적 구조 속에서 각 기업은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할리우드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의 산업구조와 협력 모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몇 달간의 움직임이 글로벌 미디어 지형의 향방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