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2026이 던지는 질문: 고전 IP는 왜 다시 ‘극장’으로 돌아왔나.

에메랄드 페넬(Emerald Fennell) 감독의 영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이 2026년 2월 13일(현지시간) 밸런타인데이 주말에 맞춰 개봉했다. 개봉 첫날(금요일) 미국 3,682개 스크린에서 1,100만 달러(약 158억5,000만원)를 기록했다. 개봉 4일 누적은 3,800만~4,000만 달러(약 547억5,000만원~576억3,000만원)가 전망된다.

관객 반응 지표는 로튼토마토 85%, 포스트트랙(PostTrak) 3.5/5 및 ‘강력 추천(Definite Recommend)’ 59%, 시네마스코어(CinemaScore) B로, 영화에 대한 호감은 확보했지만 전폭적인 관심을 보이진 않는다. 이 수치가 업계에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영화 '폭풍의 언덕'이 단순한 흥행 성적표가 아니라, 고전 IP를 2026년형 상품으로 재패키징하는 방식—스타 캐스팅, 사전 논쟁, 시즌성 개봉 전략, 이후 유통 확장까지—을 동시에 시험하는 산업 사례이기 때문이다.

Emerald Fennell and Margot Robbie on the set of 'Wuthering Heights'
(출처 : Warner Bros.)

스트리밍 시대의 고전은 ‘리메이크’가 아니라 ‘카탈로그 트리거’

지금까지 '폭풍의 언덕'은 이미 여러 차례 스크린과 TV로 옮겨졌다.1939년 영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939)', 1992년 영화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Emily Brontë’s Wuthering Heights, 1992)', 2009년 미니시리즈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miniseries, 2009)', 2011년 영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2011)', 1998년 TV 영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998)'과 2003년 MTV 하이틴 뮤지컬 버전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2003)'까지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2026년의 관전 포인트는 ‘새로운 각색’ 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다양한 버전들이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를 통해 동시에 소비되는 환경을 통해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의 재시청과 비교 시청을 촉발하는 ‘카탈로그 동시 소비’ 구조가 강화됐다는 점이다. 이번 신작은 ‘전작을 대체하는 작품’이 아니라 ‘전작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트리거(trigger)’로 기능한다.

작품명 연도주요 출연/특징현재 이용 가능 스트리밍 서비스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1939Laurence Olivier / 고전 영화,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Max(HBO Max), Prime Video, Tubi, Sling TV, Plex
Emily Brontë’s Wuthering Heights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1992Ralph Fiennes, Juliette Binoche / 2세대 서사 포함Pluto TV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 Miniseries2009Tom Hardy / TV 미니시리즈Plex, PBS (일부 지역 제한)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2011Kaya Scodelario / Andrea Arnold 연출Tubi, Pluto TV, Fandango at Home, AMC+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 TV Movie1998Matthew Macfadyen 출연Pluto TV, Prime Video, Shout! Factory Channel(아마존), YouTube (지역별 상이)
Wuthering Heights (폭풍의 언덕) MTV Version2003하이틴 뮤지컬 버전Paramount+, fuboTV, The Roku Channel, hoopla, DIRECTV, Netflix (지역별 상이)

미디어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는 단순한 IP 재활용이 아니라 극장 개봉을 검색·재시청·비교 시청의 출발점으로 설계하는 카탈로그 전략이다. 특히 고전 문학 기반 IP는 설정과 결말을 이미 아는 관객이 많아, 스포일러 리스크가 낮고, 버전 비교가 곧 참여(engagement)로 전환되는 장점이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끝내지 않고 “1939년판은 어디서 보지”, “2세대 서사가 있는 1992년판은 왜 많이 언급되지” 같은 경로로 이동한다. 신작의 성패는 개봉주말 총액만이 아니라, 이후 몇 주간 관련 키워드의 재시청 곡선이 얼마나 가파르게 올라가는지로도 읽힌다.

캐스팅 논쟁은 리스크가 아니라 ‘사전 트래픽 확보’ 장치

제이콥 엘로디(Jacob Elordi)의 히스클리프(Heathcliff) 캐스팅은 원작 묘사(‘dark-skinned’라는 표현을 둘러싼 해석)와 맞물리며 공개 전부터 반발을 불렀다. 여기에 마고 로비(Margot Robbie)의 캐서린(Catherine) 캐스팅도 원작의 외형, 그리고 실제 나이와 설정 연령의 간극으로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가 보여준 것은 논쟁을 회피하지 않고, 스타가 정면 돌파 메시지로 프레임을 선점하는 방식이다. 로비가 엘로디를 “우리 세대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라고까지 치켜세운 발언은, 논쟁의 축을 '연기력'으로 이동시킨 커뮤니케이션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고전 IP의 마케팅은 텍스트 충실도 경쟁이 아니라 해석의 주도권 경쟁으로 바뀐다. 감독은 따옴표가 들어간 “Wuthering Heights”라는 톤으로 ‘원작의 정답을 재현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던지고, 스타는 ‘결과를 보면 납득할 것’이라는 정서적 보증을 건다. 즉, 논쟁은 작품의 약점이 아니라 개봉 전 검색량과 예고편 도달을 증폭시키는 엔진이 된다. 물론 이는 개봉 후 전환율이 뒤따르지 않으면 역풍이 되지만, 최소한 사전 관심을 ‘확보’하는 데에는 효율적인 구조다.

35mm 비스타비전(VistaVision)은 기술 선택이 아니라 ‘극장 차별화’ 선언이다.

이번 작품은 35mm 비스타비전 카메라로 촬영됐다는 점이 강조됐다. 최근에는 대부분 영화가 디지털로 촬영된다. 그런 상황에서 대형 필름 포맷을 선택했다는 것은, 제작비와 제작 난이도가 더 높아지는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일부러 다른 길을 택했다는 의미다.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미지’라는 인식을 심어야만, 밸런타인데이 같은 이벤트 주말에 현장 구매 비중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번 영화에 대해 "이미지가 압도적이고 황홀하다”는 반응이 반복된 배경에도, 이 포맷 전략이 깔려 있다.

눈여겨볼 점은, 필름 같은 아날로그 촬영 방식이 고전 IP와 만날 때 더 잘 매칭된다는 것이다. 고전 작품은 ‘오래된 시간의 분위기’ 자체가 가치인데, 필름 영상은 디지털보다 거칠고 깊은 질감이 남아 그 분위기를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 선택은 단순히 촬영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이미지를 더 ‘클래식’하게 보이게 만드는 홍보 포인트로도 쓰일 수 있다.

35mm VistaVision과 Super 35의 차이
(출처 : https://www.indepthcine.com/videos/vistavision)

비평 양극화는 흥행의 적이 아니라 ‘대화량’의 연료가 된다.

공개 직후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가디언(The Guardian)은 “감정이 비어 있다”는 취지로 혹평한 반면,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과감하고 거친 매력이 있다”며 높게 평가했다. 겉으로 보면 이런 엇갈린 평가는 약점처럼 보이지만, 업계에선 오히려 관객의 ‘대화’를 늘리는 요인이 된다. 요즘 흥행 경쟁에서 중요한 건 ‘좋다/싫다’의 결론보다, 사람들이 작품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이어가느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기 지표인 시네마스코어 B와 포스트트랙 ‘강력 추천’ 59%는 의미가 크다. 대중적 만족이 A급으로 폭발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볼만하다’는 수준이 유지되면 논쟁형 영화는 오히려 오래 버틴다. 찬반이 갈릴수록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2026 영화 '폭풍의 언덕'은 '고전의 현대화’가 아니라 ‘유통의 현대화’

이번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원작을 얼마나 정확히 옮겼는지로만 읽히기 어렵다. 스트리밍에서 다수의 과거 버전이 동시에 소비되는 시대에, 신작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비교 시청을 촉발하는 이벤트로 설계된다.

캐스팅을 둘러싼 논란은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검색과 클릭을 끌어올리는 ‘관심 유발 장치’가 된다. 35mm 비스타비전(VistaVision) 촬영은 “이건 큰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는 이유를 만들어 극장 관람을 설득한다. 여기에 샤를리 XCX(Charli XCX)가 앨범 단위로 참여하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음악을 통해 다시 떠올리고 공유하게 만드는 ‘재접촉 경로’가 생긴다.

결국 이 작품이 업계에 남기는 인사이트는 하나다. 고전 IP의 경쟁력은 ‘스토리’가 아니라 ‘패키징’에서 결정된다. 극장, 음악, 스트리밍 카탈로그, 소셜 대화량을 하나의 제품처럼 묶어낼 수 있을 때, 고전은 다시 현재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