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 스며든 인공지능…방송사의 실험과 도전

2025년 9월, 미국 방송계는 ‘AI 활용’을 둘러싼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전통적 방송은 시청률 하락, 광고 감소, 인재 유출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사들이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위기 속 기회를 모색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뉴스 부문과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AI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다.

지역 방송국, 뉴스룸에 AI 본격 도입

미국 지역 방송국들은 AI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다. RTDNA 조사에 따르면 전체 지역 보도국 중 약 3분의 1이 이미 AI를 도입했다고 답했다. 활용 분야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회의 전사 및 요약 기능이 있다. 시의회, 교육위원회 등 지역 공공 회의를 AI가 실시간으로 전사·요약하여 기자들이 기사화하는 데 활용한다. 이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소규모 뉴스룸이 더 많은 회의를 커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자동 자막·번역 기능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시청자 중 상당수가 영어 외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 특성상, 다국어 접근성은 뉴스 서비스의 핵심이다. 미국의 대형 방송사 신클레어(Sinclair)는 AI 실시간 번역을 도입해 로컬 뉴스 생방송을 스페인어로 동시에 송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방송사가 지역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강화하는 중요한 시도다.

신클레어 로컬 뉴스
(출처 : https://sbgi.net/news/)

한편 일부 지역 매체는 AI 기사 작성 보조 도구를 도입했다. 가넷(Gannett) 산하 지역 언론들은 AI를 활용해 기사 초안을 생성하고, 이를 기자들이 편집·보완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물론 기사에는 AI 활용 사실을 명시해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병행된다.

폭스(Fox)와 투비(Tubi), AI로 콘텐츠 전략 혁신

미국 메이저 방송사 폭스(Fox)와 자회사 스트리밍 서비스 투비(Tubi)는 AI를 활용한 전략적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폭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멜로디 힐데브란트(Melody Hildebrandt)는 AI 모델을 직접 실험하며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한다.

폭스는 새로 출범한 스트리밍 플랫폼 ‘폭스 원(Fox One)’에서 AI 기반 영상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경기나 프로그램의 주요 장면을 자동으로 추출하고, 숏폼(short-form) 영상으로 재가공해 제공한다. 단순히 득점 장면을 편집하는 수준을 넘어, 선수들 간의 짧은 교류나 예상치 못한 순간까지 포착해 즉각 바이럴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투비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니콜 팔라피아노(Nicole Parlapiano)는 AI 활용의 핵심을 “문제 해결 중심”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히 AI를 쓰기 위한 도입이 아니라, 마케팅 현장에서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AI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투비는 성과 분석, 댓글 관리, 영상 편집 등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업무에 AI를 투입해 팀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팔라피아노는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능력을 스케일업(scale-up)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FOX ONE
(출처 : https://www.ainvest.com/)

뉴스룸의 변화: 인력, 윤리, 신뢰성

AI의 뉴스룸 도입은 인력 구조와 직무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젊은 기자와 엔지니어들은 AI 툴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며 빠르게 성장한다. 실제로 한 신입 엔지니어는 생성형 AI 코딩 툴 덕분에 업무 효율이 10배 향상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초급 인재들이 단순 작업을 넘어 더 높은 수준의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다. 반면 중간 관리자층은 상대적으로 역할 축소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윤리와 신뢰성 문제도 남아 있다. 자동 기사 작성, 요약, 번역 과정에서 오류나 왜곡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저널리즘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다수의 방송국은 AI 활용 시 고지와 투명성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편집자의 검증을 필수 과정으로 포함한다.

포스트 SEO(Post-SEO) 시대, 콘텐츠 전략의 재편

폭스와 투비 사례에서 드러나듯, 방송사들은 AI 시대에 ‘포스트 SEO’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기존에는 검색 최적화(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가 온라인 유입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봇(bot) 트래픽이 대세로 자리잡으며 AI 요약과 추천이 주류가 되고 있다.

힐데브란트는 “인터넷 트래픽의 다수가 인간이 아니라 봇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콘텐츠를 봇에 최적화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방송사들은 브랜드 인지도 제고, 진정성 있는 콘텐츠 제공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하고 있다.

위기 속 기회: AI가 열어가는 방송의 미래

전반적으로 미국 방송사들이 AI를 도입하는 목적은 명확하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 속에서 효율을 극대화하고, 콘텐츠를 다양화하며, 새로운 시청 경험을 창출하는 것이다. 동시에 언론의 핵심 가치인 정확성과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병행된다.

한국 방송계 역시 이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방송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올바른 활용과 윤리적 기준이 뒷받침된다면 방송사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과 사람의 판단력이다.

AI가 위기의 방송사가 돌파구를 찾기 위한 ‘도구’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