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여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 에이전시 계약으로 엔터테인먼트 지각 변동 예고

헐리우드, AI 스타 탄생에 술렁

헐리우드가 ‘가상 배우’ 등장 소식으로 술렁이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배우 겸 프로듀서 엘리네 반 더 벨덴(Eline van der Velden)이 창조한 AI 여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가 곧 정식으로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지난 9월 스위스에서 열린 ‘취리히 서밋(Zurich Summit)’에서 반 더 벨덴은 “이미 여러 에이전시가 틸리를 주목하고 있으며, 조만간 계약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곧바로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에 파문을 일으켰다.

Diana Lodderhose, Eline Van der Velden and Verena Puhm
(출처 : DEADLINE.COM)

‘존재하지 않는 여배우’ 틸리의 등장

틸리 노우드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고해상도 이미지 생성, 음성 합성, 3D 모션 리깅 등 최신 AI 기술이 결합돼 만들어진 가상 캐릭터다.

그녀는 반 더 벨덴이 설립한 AI 인재 매니지먼트 스튜디오 Xicoia의 첫 프로젝트로, 데뷔작은 2분짜리 AI 코미디 영상 ‘AI Commissioner’였다. 대본부터 배우, 목소리, 배경까지 전부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이다.

틸리 노우드가 첫 등장한 ‘AI Commissioner’는 대본과 연기, 음성까지 모두 AI 기술로 만들어졌다.

반 더 벨덴은 “틸리를 차세대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이나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 같은 배우로 키우고 싶다”며, “관객이 원하는 건 배우의 맥박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기술로 그려낸 ‘하이퍼리얼 스타’

틸리 노우드의 탄생은 단순한 가상 이미지 합성이 아니다. 제작사, 시코이아(Xicoia)는 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실존 배우와 유사한 몰입감을 주는 ‘하이퍼리얼 스타’를 구현하고 있다.

먼저 얼굴 합성과 표정 생성에는 최신 딥러닝 기반 확산 모델(diffusion model)이 적용됐다. 이 기술은 기존의 GAN(적대적 신경망)보다 더 섬세하게 피부 질감, 미세한 표정 변화를 구현할 수 있다. 덕분에 웃음·분노·놀람 등 복잡한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이어 3D 모션 리깅(Rigging) 기법을 통해 눈동자의 움직임, 시선 처리, 손동작까지 디테일을 살렸다. 단순히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배우처럼 자연스럽게 화면 속에서 연기할 수 있도록 정교한 뼈대(bone) 구조와 움직임 알고리즘을 결합했다는 설명이다.

음성 합성 기술도 핵심이다. 특정 인물의 목소리 샘플을 학습한 후 감정 톤을 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사 속 억양과 감정선을 인위적으로 조율한다. 실제 촬영 현장에서 배우가 목소리 톤을 바꾸듯, 인공지능 역시 상황에 맞춰 기쁨·슬픔·분노의 뉘앙스를 구현할 수 있다.

또한 대사 생성에는 대화형 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이 활용된다. 캐릭터의 성격과 서사적 배경을 입력하면, 자연스러운 대사와 상황 대처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시코이아는 이를 통해 틸리가 단순히 대본을 읽는 존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개입할 수 있는 ‘배우형 캐릭터’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팬 상호작용 기능이 더해졌다. SNS 운영팀은 AI 챗봇과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결합해, 틸리가 팬 댓글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꾸민다. 이는 기존 가상 인플루언서와 달리, 관객이 캐릭터와 직접 대화하고 교류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시코이아는 이러한 기술적 융합을 통해 제작비 절감 효과가 최대 90%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배우 캐스팅·촬영 일정·현장 비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틸리를 단순한 실험용 프로젝트가 아닌, 하나의 지적재산(IP)으로 관리하고 수익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브랜드 광고, 드라마 출연, 온라인 팬미팅 등 틸리를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이미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헐리우드의 거센 반발

그러나 업계 반발은 만만치 않다. 미국 배우 멜리사 바레라(Melissa Barrera)는 SNS에서 “이런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배우는 모두 떠나라. 역겹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배우 키어시 클레몬스(Kiersey Clemons)는 “어느 에이전시인지 공개하라”고 촉구했고, 마라 윌슨(Mara Wilson)은 “수백 명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것 아니냐”며 초상권 침해 문제를 제기했다.

배우 루카스 게이지(Lukas Gage)는 “악몽 같은 동료였다, 지각이나 하고 마크도 못 잡았다”며 풍자 섞인 농담을 던졌고, 토니 콜렛(Toni Collette)은 단순히 비명 이모지만 남겼다.

헐리우드 노조인 SAG-AFTRA 역시 즉각 성명을 내고 “창작은 인간 중심이어야 하며, AI 배우의 등장은 노동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도구인가, 위협인가

비판이 이어지자 반 더 벨덴은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틸리는 인간 배우의 대체물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며, “AI는 새로운 붓일 뿐, 배우의 연기와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AI 캐릭터는 인간 배우와 비교하기보다 독립된 장르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산업 전환점을 예고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일부 스튜디오는 이미 비공개적으로 AI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내년 초 다수의 관련 발표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과제

한국 역시 K-팝, K-드라마, 웹툰 등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 배우 도입은 제작비 절감과 글로벌 확산에 유리할 수 있지만, 초상권·저작권 문제, 배우 노동권 보호, 윤리적 기준 설정 등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AI 배우가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와 사회적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며 “한국도 규제·기술·산업 생태계 전반의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 2023년 미국 배우·작가 파업 당시 AI 반대 구호가 적힌 피켓. 틸리 노우드 논란은 당시 우려가 현실화된 사례로 해석된다.

AI 여배우 틸리 노우드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이벤트가 아니다. 이는 “가상 배우가 실제 에이전시에 소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예술의 본질과 노동의 미래를 되묻는 사건이다. 헐리우드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AI 배우의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한국 콘텐츠 시장이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