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플랫폼을 넘어 유료방송이 된 유튜브TV의 힘…디즈니 블랙아웃이 남긴 것 [1편]
디즈니 블랙아웃, 단순 분쟁 아닌 ‘위상 확인전’
ESPN과 ABC가 사라졌던 유튜브 TV 화면에 다시 디즈니 채널이 돌아왔다. 10월 30일(현지시간) 자정 직전 시작된 블랙아웃은 11월 14일 새 합의 발표로 2주 만에 종료됐다. 겉으로는 익숙한 ‘송출 중단–재계약’ 분쟁처럼 보이지만, 이번 사태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튜브 TV는 더 이상 부가적인 스트리밍 옵션이 아니라, 디즈니와 정면으로 맞붙는 유료방송 인프라 플레이어가 됐다는 점이다.
유튜브 TV는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장기 블랙아웃”을 전제로 20달러 크레딧 지급을 고지했고, 실제로 11월 9일부터 순차 지급에 들어갔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추산에 따르면 디즈니는 주당 3천만달러(약 435억 원), 하루 430만달러(약 62억 원) 규모의 매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 유튜브TV에서 디즈니의 블랙아웃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약 1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유튜브 TV 가입자들은 두 주 연속 월요 나이트 풋볼, 토요일 컬리지 풋볼, ABC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다.
이번 충돌은 단순한 ‘협상 실패’로만 볼 수 없다. 가격 인상과 시장 가격 ‘리셋’을 둘러싼 전형적인 채널 송출 대가(재송신료) 분쟁이면서도, 그 무대가 더 이상 케이블·위성이 아니라 유튜브 TV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무엇보다 ESPN 언리미티드(Unlimited)와 디즈니+·훌루 번들을 앞세운 디즈니의 스트리밍 전략과, ‘슈퍼 유통 채널’로 성장한 유튜브 TV의 협상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점에서, 이용자와 전문가 모두의 이목을 끈 사건이다. 디즈니로서는 유튜브 TV를 통해 수 천만 시청자에게 채널을 제공하면서 광고 매출과 시청률이 중요하고, 유튜브 TV 입장에서는 디즈니 채널 부재가 곧 가입자 이탈 리스크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가 서로를 핵심 인프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번 블랙아웃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가장 빨리 성장 ‘4번째 유료방송사’
유튜브 TV는 2017년 출범 당시만 해도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미국 유료방송 시장에 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2024년 초 가입자가 9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 데 이어, 연말에는 1,000만 명 안팎까지 도달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추정이다. 유튜브 TV가 공식 가입자 수를 공개하지 않음에도 디즈니, NBC유니버설, 블룸버그 등 주요 파트너들이 모두 ‘1,000만 이상’을 전제로 협상과 보도자료를 내고 있다는 점은, 플랫폼의 실제 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vMVPD(인터넷 기반 유료방송)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유튜브 TV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하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vMVPD 가입자가 약 1,800만 가구로 추산되는 가운데, 이 중 절반 가까이를 유튜브 TV가 흡수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리서치 기관들은 유튜브 TV를 이미 케이블·위성까지 포함한 미국 4대 유료방송 사업자로 분류하고 있다. 2025~2026년 사이에는 위성방송 디렉TV를 추월해 ‘톱3’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단순한 OTT 서비스가 아니라 ‘또 하나의 메이저 유료방송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용자 입장에서 유튜브 TV는 더 이상 OTT 플랫폼의 부가 옵션이 아니다. 컴캐스트, 차터, 디렉TV, 디시(Dish) 네트워크와 같은 위치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협상하는, 사실상 동급 사업자로 올라섰다.
유튜브TV의 기본 요금제는 월 82.99달러로 전통 케이블보다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NFL·NBA·MLB·프리미어리그 등 핵심 스포츠와 주요 뉴스 채널을 하나의 라이브 번들로 묶어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격 대비 가치’에 대한 이용자 체감 꽤 높은 편이다. 전통 유료방송이 채널 수를 줄이며 비용 절감에 나서는 동안, 유튜브 TV는 오히려 스포츠와 뉴스,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라인업을 유지·강화하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유튜브TV의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유튜브’라는 훨씬 더 큰 생태계가 깔려 있다. 유튜브는 이미 TV 화면에서만 하루 10억 시간 이상 시청이 이뤄지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젠 넷플릭스와 함께 거실 시청 환경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유튜브 TV는 이 방대한 무료 동영상 생태계 위에 겹쳐진 유료 라이브 TV 계층이다. 구글 입장에서 유튜브 TV는 단순한 케이블 대체 상품이라기보다, 유튜브의 ‘리빙룸 지배력’을 완성하는 프리미엄 티어에 가깝다. 무료 동영상, 라이브 채널, 프리미엄 스포츠, 제휴 OTT 번들을 한 화면에서 엮어내며, 거실 TV에서의 체류 시간을 경쟁사보다 더 많이 가져오는 것이 유튜브 TV 전략의 핵심이다.
강해진 협상력, 빅테크–콘텐츠 힘겨루기의 상징
이번 디즈니 블랙아웃은 이런 성장의 결과로 유튜브 TV가 확보한 협상력, 그리고 그 이면의 리스크를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다.
디즈니 입장에서 유튜브 TV는 더 이상 “있으면 좋은 추가 유통창구”가 아니다. 2주간의 블랙아웃 동안 디즈니가 잃은 매출은 약 6,000만달러(약 869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특히 스포츠 중계와 대선 보도,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에서 이탈한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고려하면 손실 체감은 더 크다. 내부적으로도 “구글과의 힘겨루기가 길어질수록 ESPN·ABC 브랜드 파워가 훼손된다”는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튜브 TV 역시 부담은 적지 않았다. 한 설문조사에서 가입자의 약 4분의 1이 “이미 해지했거나 해지 의향이 있다”고 응답하자, 유튜브 TV는 약속했던 20달러 크레딧을 실제로 집행하며 떠나가는 이용자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유료방송사가 블랙아웃 보상금을 전면에 내걸고 적극적으로 공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유튜브 TV가 이미 케이블과 유사한 수준의 ‘생활 필수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음을 역으로 증명한다.
다른 사업자들과의 협상 구도 또한 유튜브 TV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NBC유니버설과는 기존 계약 만료 이후에도 단기 연장을 반복하며 채널 송출을 끊지 않았고, 결국 피콕과 NBC 스포츠 네트워크(NBCSN)까지 포함하는 장기 협력 패키지를 완성한 뒤에야 최종 합의를 발표했다.
반면, 텔레비사유니비전(TelevisaUnivision)과는 끝내 가격 협상을 하지 못하면서 유니비전 계열 채널은 유튜브 TV에서 완전히 빠졌다. 히스패닉 시청자들의 불만이 컸지만, 유튜브 TV는 “시청률 대비 가격이 과도하다”는 논리를 고수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디즈니, NBCU, 텔레비사유니비전(TelevisaUnivision)처럼 협상력이 강한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과 ‘대등하거나 때로는 우위에 선’ 힘겨루기를 벌이는 유료방송사가 이제 전통 케이블이 아니라 유튜브 TV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2주간의 디즈니 블랙아웃 종료는 단순히 한 건의 분쟁이 마무리됐다는 의미를 넘어, 유튜브 TV가 레거시 유료방송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프라 플레이어로 올라섰음을 확인해준 사건에 가깝다.
* 유튜브TV가 최근 여러 BIG 미디어 사업자와의 계약 과정을 보면, 유튜브 TV가 어떤 무기와 구조를 바탕으로 이 지위를 확보했고, 그 과정에서 유료방송·OTT 시장의 힘의 균형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는 ‘포스트 케이블’ 시대 미디어 지형을 읽는 핵심이 되고 있다.
[2편]에서는 스포츠와 ‘슈퍼 번들 허브’ 전략을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