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회 골든글로브, ‘One Battle After Another’ 4관왕…콘텐츠·플랫폼 전쟁의 전초전

2026년 1월 11일(현지시간) 열린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워너브러더스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와 넷플릭스의 ‘청소년기(Adolescence)’가 각각 영화·TV 부문에서 나란히 4관왕을 차지하며 시상식을 주도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역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하며 글로벌 콘텐츠 경쟁 속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번 골든글로브는 “예상된 수상 결과”와 “논란을 낳은 연출”이 동시에 교차한 밤이었다. 영화 부문에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뮤지컬·코미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여우조연상(테야나 테일러)을 휩쓸며 최다 수상작에 올랐고, TV 부문에서는 ‘청소년기’가 리미티드 시리즈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스티븐 그레이엄), 여우조연상(에린 도허티), 남우조연상(오웬 쿠퍼)을 거머쥐며 넷플릭스의 시상식 장악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영화부문 4관왕, ONE BATTLE AFTER ANOTHER(좌), TV부문 4관왕 ADOLESCENCE(우)
(출처 : IMDB)

영화 부문: 장르 구분이 만든 ‘투 톱’ 구도

골든글로브 특유의 장르 구분은 올해도 결과를 명확하게 갈랐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뮤지컬·코미디 작품상을 가져가며 “오스카 레이스의 상수”라는 평가를 강화했고,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은 감독상과 각본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테야나 테일러(Teyana Taylor)는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영화의 ‘정치적·사회적 메시지’와 배우 퍼포먼스를 함께 밀어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반면 드라마 작품상은 ‘햄넷(Hamnet)’이 차지했으며, 작품의 중심축인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도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이른바 ‘작품상-주연상 패키지’를 완성했다.

‘시너스(Sinners)’는 8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박스오피스 성취상과 음악상(루드비그 고란손·Ludwig Göransson) 등 2관왕에 그쳤다. 후보 지형만 보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와 맞붙는 구도였지만, 실제 수상 흐름은 분산됐다. 남우조연상은 ‘센티멘털 밸류(Sentimental Value)’의 스텔란 스카스가드(Stellan Skarsgård)가 가져갔고,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은 ‘마티 슈프림(Marty Supreme)’의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가 수상했다.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은 ‘이프 아이 해드 레그스 아일 킥 유(If I Had Legs I’d Kick You)’의 로즈 번(Rose Byrne)에게 돌아가며, 시상식 내내 “그날의 가장 의외의 결과”로 언급됐다.

비영어권과 글로벌 캐스팅: ‘The Secret Agent’의 존재감

국제 부문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은 브라질 영화 ‘더 시크릿 에이전트(The Secret Agent)’였다. 비영어권 영화상을 받은 데 이어,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까지 바그너 모라(Wagner Moura)가 수상하며 “골든글로브가 가진 국제성”을 다시 전면에 세웠다.

특히 모라가 드라마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해당 부문 최초의 브라질 수상자가 됐다는 점은, 글로벌 인재 풀을 향한 시상식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일부 수상 소감 도중 오케스트라가 연설을 끊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시상식의 ‘속도전’이 국제 부문 수상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가혹하게 작동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The Secret Agent (2025)

스트리밍 경쟁의 압축판: 넷플릭스·애플TV·HBO Max ‘삼각 구도’

TV 부문은 플랫폼 전쟁의 현재를 압축해 보여줬다. 드라마 시리즈 작품상은 HBO Max의 ‘더 피트(The Pitt)’, 코미디 시리즈 작품상은 애플TV 플러스(Apple TV+)의 ‘더 스튜디오(The Studio)’, 리미티드 시리즈 작품상은 넷플릭스(Netflix) ‘청소년기(Adolescence)’가 각각 차지하며, 주요 트로피가 플랫폼별로 분산됐다.

연기상에서도 흐름은 비교적 뚜렷했다. ‘더 피트(The Pitt)’의 노아 와일리(Noah Wyle)가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더 스튜디오(The Studio)’의 세스 로건(Seth Rogen)이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핵스(Hacks)’의 진 스마트(Jean Smart)가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에미상 수상 흐름의 재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THE PITT(좌), THE STUDIO(우)

그럼에도 ‘새로움’은 존재했다. ‘플루리버스(Pluribus)’의 레아 시혼(Rhea Seehorn)이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다잉 포 섹스(Dying for Sex)’의 미셸 윌리엄스(Michelle Williams)가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일부 부문에서는 예측을 흔들었다.

넷플릭스 ‘청소년기(Adolescence)’는 스티븐 그레이엄(Stephen Graham·리미티드 부문 남우주연상), 에린 도허티(Erin Doherty·TV 부문 여우조연상), 오웬 쿠퍼(Owen Cooper·TV 부문 남우조연상)까지 수상 대열을 넓히며 “올해 TV 부문 최대 승자”로 자리매김했다.

넷플릭스 애니 ‘KPop Demon Hunters’ 2관왕…IP 확장 신호

콘텐츠 확장 측면에서 눈에 띈 결과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의 2관왕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에 더해 주제가상(‘Golden’)까지 수상하며, “음악·애니·팬덤을 묶는 멀티포맷 IP”가 시상식 무대에서도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줬다. 흥행 성취상 후보에 함께 이름을 올린 점까지 감안하면, 스트리밍 오리지널이 극장 흥행 중심의 전통 지표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입증한 셈이다.

'Golden'을 공동 작곡한 Kim Eun-jae (EJAE), Mark Sonnenblick 
(출처 : ABC NEWS)

‘팟캐스트’ 첫 신설…주의력 시장을 노리는 포맷 전쟁

올해 골든글로브가 새롭게 팟캐스트 부문을 신설했다. 첫 수상의 영예는 ‘굿 행 위드 에이미 폴러(Good Hang with Amy Poehler)’에 돌아갔다.

전통적으로 영화와 TV 중심이던 시상식이 오디오 콘텐츠까지 포괄한 것은 단순한 외연 확장을 넘어, 광고·구독·브랜디드 콘텐츠가 교차하는 ‘주의력 시장’ 속에서 플랫폼형 포맷을 공식적인 주류로 인정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뉴스 팟캐스트와 토크쇼가 한 카테고리에서 경쟁하는 등 선정 기준의 모호함이 지적되며, 신설 부문 설계의 정교화가 향후 과제로 남았다.

Good Hang with Amy Poehler
(출처 : Youtube, Golden Bolbes)

연출 논란: 베팅 그래픽, UFC 출연, 클립 편성의 ‘상업성 과잉’

시상식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무난하고 보수적인 선택”으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신뢰 회복을 노렸다고 하지만, 과도한 상업성으로 오히려 산만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진행 중 온라인 베팅 플랫폼인 폴리마켓(Polymarket)의 확률 그래픽이 반복 노출되거나, 일부는 광고 시간대로 밀려나는 반면 특정 상은 길게 클립을 틀어주는 등 편성의 일관성이 흔들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무대에 UFC 파이터를 ‘보안’ 콘셉트로 올리는 장면처럼 화제성 장치를 덧대는 방식도 “시상식의 격과 몰입을 분산시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과도한 상업성과 산만함을 지적받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 2026
(출처 : Isaac Feldberg/X))

데이터로 굳어지는 레이스, 플랫폼이 바꾸는 ‘상’의 의미

제83회 골든글로브는 신뢰 회복과 상업화라는 두 축이 충돌하는 전환점에 서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장르 구분의 명확화와 비교적 보수적인 수상 선택은 한때 흔들렸던 심사의 권위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읽혔고, 에미·비평가상 흐름과의 정합성 역시 ‘예측 가능한 시상식’이라는 안정감을 제공했다. 이는 골든글로브가 더 이상 화제성 위주의 파격보다는 업계의 기준점 역할을 회복하려 한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동시에 노출된 베팅 그래픽, 스폰서 중심의 연출, 포맷 확장에 따른 기준의 혼선은 상업화의 그림자를 선명히 드러냈다. 주의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시상식은 더 많은 포맷과 이벤트를 끌어안지만, 그 과정에서 시상의 의미와 집중도가 희석될 위험도 커진다. 신뢰 회복을 위한 보수적 선택과 시청률·광고를 향한 확장은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제83회 골든글로브는 그 균형을 아직 완전히 찾지 못했음을 보여주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산업 전반에 던졌다. 결국 골든글로브의 다음 과제는 확장된 무대가 아니라, 그 무대 위의 본질, ‘왜 이 상이어야 하는가’를 증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