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와 넷플릭스 사이…WBC가 보여준 스포츠 중계권 전쟁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3월 5일 개막하며 한국과 일본에서 야구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3월 5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미국·일본·한국 등 20개국이 참가하며 오타니 쇼헤이, 애런 저지 등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대거 출전해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9일 호주전 승리로 조 2위를 확정하며 8강에 진출했다. 한국 야구가 WBC 결선 라운드에 오른 것은 2009년 준우승 이후 17년 만이다.
한국과 일본은 WBC의 대표적인 인기 시장이다. 일본은 2023년 대회에서 일부 경기 가구 시청률이 40%를 넘고 평균 시청자가 3400만~39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역시 대표팀 경기마다 높은 시청률과 온라인 화제성을 기록하며 국민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는 경기 자체뿐 아니라 중계 플랫폼이 한국과 일본에서 크게 갈리면서 미디어 산업 측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지상파 중계로 시청률 상승
한국에서는 WBC 경기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중계되며 시청률과 관심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26년 WBC 조별리그 한국-호주전의 지상파 3사 합산 시청률은 전국 기준 12.4%를 기록했다. 채널별 시청률은 SBS 5.1%, MBC 4.1%, KBS2 3.2%로 집계됐다.
3월 7일 열린 한일전은 합산 시청률 16.5%를 기록하며 이번 대회 한국 경기 가운데 가장 높은 관심을 끌었다. 대만전 역시 9.6%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시청자 유입을 유지했다.
이 수치는 지난 2월 열린 동계올림픽과 비교해도 차이가 나타난다. 동계올림픽은 JTBC 단독 중계 체제로 운영되면서 시청 접근성이 제한됐고, 이에 따라 관심과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WBC는 지상파 중계로 접근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시청률과 온라인 화제성이 동시에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WBC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플랫폼 접근성이 시청률과 관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국가대표 스포츠 이벤트에서는 여전히 지상파 방송이 가장 강력한 도달력을 확보한 플랫폼이라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일본, 넷플릭스 독점 중계 논쟁
반면 일본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WBC 일본 중계권은 넷플릭스가 확보해 전 경기 47경기가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시청 가능하다. 이는 일본에서 넷플릭스가 확보한 첫 대형 라이브 스포츠 중계권이며, 사무라이 재팬의 WBC 경기가 지상파 TV에서 방송되지 않는 것도 처음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일본 미디어 시장에서 논쟁을 불러왔다. 일부 시청자들은 “국가대표 경기를 돈을 내고 봐야 한다”거나 “가족이 함께 TV로 보던 야구가 개인 스트리밍 콘텐츠가 됐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고령층을 중심으로 스트리밍 서비스 접근성이 낮아 시청 장벽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스포츠바나 거리 응원 등 공공 시청 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넷플릭스 라이선스 규정 때문에 일부 스포츠바에서 자유로운 상영이 어려워지면서 “WBC가 집에서만 소비되는 콘텐츠가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반면 젊은 층에서는 모바일 시청과 다시보기 기능, 광고 없는 시청 환경 등 스트리밍의 편의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응도 나타난다. 일본 언론과 팬 커뮤니티에서도 “OTT 시대의 변화”라는 평가와 “국민 스포츠 이벤트의 유료화”라는 비판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넷플릭스가 WBC 중계권을 확보했음에도 별도의 스포츠 요금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WBC 경기는 광고형 요금제를 포함한 모든 넷플릭스 요금제에서 시청할 수 있도록 제공됐다. 특히 WBC 기간 동안 신규 가입자에게 첫 달 구독 할인 등을 제공하며 가입자 유입 마케팅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는 스포츠 콘텐츠를 계기로 광고형 요금제 확대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일본 넷플릭스가 WBC를 선택한 이유
넷플릭스가 일본 WBC 중계권을 확보한 배경에는 몇 가지 전략적 이유가 있다.
첫째, 라이브 스포츠 스트리밍 기술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 무대다. 넷플릭스는 영화와 드라마 중심 플랫폼에서 최근 복싱 경기와 NFL 크리스마스 경기 등 라이브 스포츠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 WBC는 수천만 명이 동시에 시청하는 이벤트로 대규모 동시 접속과 스트리밍 안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사례다.
둘째, 일본 시장에서 신규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콘텐츠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야구 시장 중 하나이며 WBC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이벤트다. 독점 제공을 통해 단기간에 신규 가입자를 늘리고 기존 가입자의 이용 시간도 확대할 수 있다.
셋째, 광고 사업 확대를 위한 기반 구축이다. 넷플릭스는 최근 광고형 요금제를 도입하며 광고 기반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스포츠는 광고 효과와 시청 집중도가 높은 콘텐츠로 평가되기 때문에 대형 스포츠 이벤트 확보는 광고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넷째, MLB와의 협력 관계 확대다. 넷플릭스는 WBC뿐 아니라 MLB 관련 라이브 이벤트 중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야구 콘텐츠를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스포츠 포트폴리오로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섯째, 일본 스포츠 시청 구조 변화를 시험하려는 의도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상파 중심 스포츠 시청 문화가 강한 시장이다. 넷플릭스는 WBC 같은 대형 이벤트를 통해 이러한 시청 습관이 OTT 기반 스트리밍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스포츠가 미디어 플랫폼 경쟁의 핵심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스포츠 콘텐츠의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닐슨이 2026년 3월 12일 공개한 ‘2026 Upfront Planning Guide’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미국 25~54세의 광고 기반 TV 시청 시간 가운데 스포츠 비중은 약 30%로 집계됐다. 이는 스포츠가 광고 기반 TV 환경에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실시간 시청 유인 콘텐츠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스포츠는 실시간 시청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다른 콘텐츠와 차별화된다. 드라마나 영화는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지만 스포츠 경기는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광고 효과와 시청 집중도가 높고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핵심 콘텐츠가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스포츠 중계권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통 방송사는 높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스포츠를 지키려 하고 있고,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은 가입자 확대와 광고 사업을 위해 스포츠 확보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FAST) 역시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이용자 유입을 늘리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스포츠는 전통 TV와 유료 스트리밍, 무료 스트리밍까지 모든 플랫폼이 확보하려는 핵심 콘텐츠가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WBC 중계 방식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글로벌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