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 뒤에 가려진 할리우드의 다양성 후퇴
2025년 스트리밍 영화에서 유색인종 주연 비중은 51%에서 36%로 추락했다. 유색인종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41%에서 31.5%로, 유색인종 작가가 참여한 작품은 30%에서 21.3%로 줄었다. 불과 1년 만에 스트리밍 영화의 다양성 지표가 주연·감독·작가 전 부문에서 뒷걸음질 친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시아계 여성 주인공과 감독을 내세운 넷플릭스(Netflix)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206억 분의 시청 시간을 기록하고, 2025년 스트리밍 영화 관련 소셜미디어 반응의 32.1%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 시청 지표에서도 2위 작품을 약 세 배 앞섰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의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 2026: 스트리밍 영화(Hollywood Diversity Report 2026: Streaming Film)’가 보여준 현실은 역설적이다.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시장을 압도했지만, 할리우드는 여성과 유색인종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기회를 오히려 줄였다.
스트리밍의 열린 문, 시장 축소와 함께 좁아졌다
UCLA는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Amazon Prime Video), 애플TV+(Apple TV+), 디즈니+(Disney+), 훌루(Hulu), 맥스(Max), 파라마운트+(Paramount+), 피콕(Peacock)에서 2025년 공개된 영어권 오리지널 영화 89편을 분석했다. 조사 기준을 충족한 작품이 100편 아래로 줄어든 것은 스트리밍 오리지널 영화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성 후퇴는 전체 출연진에서도 나타났다. 유색인종 배우가 출연진의 절반을 넘는 작품은 2024년 전체의 41%였지만 2025년에는 25.8%로 줄었다. 반면 유색인종 배우 비중이 21~30%인 작품은 15%에서 29.2%로 늘어나 가장 큰 구간이 됐다. UCLA가 스트리밍 영화를 별도로 조사한 이후 처음으로 유색인종 배우가 과반인 작품이 가장 많은 유형에서 밀려났다.
전체 주요 배역에서 유색인종 배우 비중은 43.1%로 미국 인구 비중 45.2%에 근접했다. 하지만 주연과 감독, 작가처럼 작품의 서사와 제작 방향을 좌우하는 자리로 갈수록 대표성은 크게 낮아졌다. 극장 영화보다 다양한 창작자에게 열려 있던 스트리밍의 진입 통로가 시장 축소와 함께 좁아진 것이다.
여성 주연은 늘었지만 제작 권한과 예산은 제한됐다
여성은 전체 스트리밍 영화 주연의 58.4%를 차지해 남성을 앞섰다. 그러나 감독 비중은 23.6%, 작가 비중은 37.1%, 전체 주요 배역 비중은 42.7%에 머물렀다. 화면 앞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늘었지만, 작품을 연출하고 서사를 결정하는 자리는 여전히 남성 중심이었다.
여성 감독 작품의 81%는 제작비 2,000만 달러(한화 약 302억 원) 미만에 집중됐다. 제작비 1억 달러(약 1,509억 원) 이상인 스트리밍 영화 8편 가운데 여성 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매기 강(Maggie Kang)이 공동 연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 편뿐이었다.
여성과 유색인종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백인 남성 감독 작품보다 출연진도 다양했다. 여성 감독 작품의 76.1%, 유색인종 감독 작품의 89.3%에서 유색인종 배우 비중이 30%를 넘었다. 유색인종 여성 감독 작품만 보면 이 비율은 90%에 달했다. 누가 제작 의사결정에 참여하느냐가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의 구성까지 바꾼다는 의미이다.
장애인 배우는 주요 배역의 6.5%
장애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배우는 주연의 14.6%, 전체 주요 배역의 6.5%에 불과했다. 미국 성인의 최소 26%가 장애인이라는 기준과 비교하면 주요 배역 비중은 4분의 1 수준이다.
분석 대상 영화의 61.8%는 주요 출연진에 장애가 확인된 배우가 한 명도 없었다. 화면에서 장애가 드러나는 배우는 전체 주요 배역의 0.5%인 3명에 그쳤다. 다양성의 후퇴가 인종과 성별뿐 아니라 장애인 배우의 고용과 가시성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제작 기회는 줄었지만 관객은 다양성을 떠나지 않았다
산업의 선택과 관객의 선택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색인종 가구는 2025년 전체 가구 시청 지표 상위 10편 중 9편, 상위 20편 중 17편에서 미국 내 가구 구성 비중보다 높은 시청 비중을 기록했다. 여성은 상위 10편 중 6편, 상위 20편 중 11편에서 시청자의 과반을 차지했다.
UCLA가 처음 분석한 인종·성별 교차 시청 지표에서도 흑인 가구의 18~49세 시청자와 라틴계 가구의 여성 시청자가 상위 작품에 가장 자주 높은 반응을 보였다. 다양성을 축소하는 산업의 움직임과 달리 흥행을 이끄는 핵심 시청층은 여성과 유색인종 가구였던 셈이다.
206억 분이 보여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파급력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러한 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2025년 전체 가구 시청 지표에서 이 작품을 최고점인 100으로 환산했을 때 2위 ‘해피 길모어 2(Happy Gilmore 2)’는 33.66에 그쳤다.
| 작품 | 전체 가구 시청 지표 |
|---|---|
| 케이팝 데몬 헌터스(Netflix) | 100.00 |
| 해피 길모어 2(Netflix) | 33.66 |
| 백 인 액션(Netflix) | 31.71 |
| 마디아스 데스티네이션 웨딩(Netflix) | 22.14 |
| 스트로(Netflix) | 20.06 |
시청자는 이 영화를 총 206억 분 동안 시청했다. 작품은 2025년 스트리밍 영화 관련 전체 소셜미디어 상호작용의 32.1%를 혼자 차지했다. 유색인종 배우가 출연진의 절반을 넘고 아시아계 여성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아시아계·흑인·라틴계·백인 가구의 시청 순위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엔칸토(Encanto)’, ‘메이의 새빨간 비밀(Turning Red)’, ‘모아나(Moana)’에 이어 4년 연속 젊은 유색인종 여성이 연간 최다 시청 스트리밍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네 작품 모두 애니메이션이면서 유색인종 여성 캐릭터를 서사의 중심에 놓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화면 안의 성공과 경기장 밖의 인종차별
아시아계 여성 캐릭터가 세계적인 흥행을 이끈 시기에도 현실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오래된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2026년 북중미월드컵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는 한 현지 관중이 한국인 여성 인플루언서를 향해 양손으로 눈을 옆으로 당기는 행동을 했다. 아시아인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해당 관중의 입장권 계정을 차단하고 피해 여성을 한국과 멕시코 경기에 공식 초청해 존중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해당 관중은 공개 사과한 뒤 자신이 맡고 있던 협회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영화산업의 다양성 하락과 경기장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콘텐츠에서 아시아인을 주변 인물이나 희화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독립적인 서사의 주체로 보여주는 일이 왜 중요한지는 드러난다. 대표성은 출연진의 숫자를 맞추는 문제를 넘어 사회가 특정 집단을 바라보는 익숙한 이미지를 바꾸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양성 축소는 미래 시장의 축소가 될 수 있다
UCLA는 다양성과 시청률의 관계를 단순한 공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색인종 배우 비중이 가장 낮은 구간의 중간 시청 지표가 높았지만, 해당 구간에는 영화가 두 편뿐이어서 대표성이 낮았다. 작품 수가 충분한 구간에서는 유색인종 배우 비중이 21~30%인 영화가 모든 시청 집단에서 두 번째로 높은 중간 시청 지표를 기록했고, 31~40% 구간은 소셜미디어 반응이 가장 컸다.
다양성이 흥행을 자동으로 보장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문화적 구체성과 다양한 인물이 특정 집단만을 위한 틈새 요소가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끌어들이는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작비와 작품 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다양성까지 축소하는 것은 미래 시청자와 흥행 가능성을 스스로 좁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현실 사회에 남아 있는 낡은 고정관념을 바꿀 문화적 가능성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