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오픈한 넷플릭스 하우스, IP 테마파크 개장
넷플릭스가 11월12일(EST, 미국 동부 표준시) 필라델피아에 넷플릭스 하우스(Netflix House)를 오픈했다. 세계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가 마침내 스트리밍을 넘어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셈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킹 오브 프러시아 몰(King of Prussia Mall)에 문을 연 ‘넷플릭스 하우스(Netflix House)’는 약 10만 제곱피트(약 850평) 규모의 대형 상설 체험관으로, 넷플릭스가 지난 수년간 전 세계에서 반복해온 팝업 실험을 하나의 독립적 사업 모델로 고도화한 첫 결과물이다.
넷플릭스는 이 공간을 단순한 팬 서비스가 아닌, 자사 IP의 새로운 수익화를 위한 전략적 인프라로 규정하고 있다. 스트리밍 시장의 성숙과 제작비 상승 등 구조적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넷플릭스가 영상 외 영역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축을 마련하려는 흐름이 구체적 형태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넷플릭스 하우스는 데이터의 산물
글로벌 OTT 시장은 이미 포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신규 가입자 증가 속도는 둔화되고, 콘텐츠 제작비는 급증해 개별 타이틀의 손익분기점은 더 멀어졌다. 넷플릭스가 광고형 요금제 도입과 계정 공유 제한 같은 정책을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수익을 방어하고 비용을 줄이며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넷플릭스 하우스는 이러한 시장 불균형 상황에서 등장한 넷플릭스의 장기 전략 중 하나다.
넷플릭스는 지난 4년간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오징어게임(Squid Game)', '브리저튼(Bridgerton)', '원피스(One Piece: Quest for the Devil Fruit)' 등 주요 시리즈를 기반으로 전 세계 300개 도시에서 450회 이상의 체험형 이벤트를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IP가 현장에서 높은 팬덤 전환율을 보이는지, 어떤 연령층이 어떤 방식의 체험을 선호하는지, 어느 지역의 소비 지출이 높은지 등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넷플릭스 하우스는 그 데이터를 종합해 ‘상설화·확장 가능한 사업 모델’로 재가공한 첫 결과물이다.
원피스와 웬즈데이, 넷플릭스가 선택한 첫 대표 IP
첫 상설 공간에서 넷플릭스는 원피스와 웬즈데이(Wednesday: Eve of the Outcasts)를 앞세웠다. ‘원피스: (One Piece: Quest for the Devil Fruit)’는 원작 속 동해(East Blue)를 기반으로 한 60분짜리 인터랙티브 체험 콘텐츠다.
참여자들은 해군 기지, 알비다의 은신처, 아를롱 파크, 버기의 텐트 등 드라마에서 봤던 장소를 직접 체험하며 퍼즐을 풀고 미션을 수행한다. 세트·소품·분장까지 드라마 속 요소를 현실에 구현해 이용자가 한 시간 동안 원피스 세계관 속 ‘해적단의 일원’이 되는 방식이다.
‘웬즈데이: 이브 오브 더 아웃캐스트’ 역시 단순 전시장 형태를 넘어서 스토리를 직접 탐색하고 참여해야 하는 인터랙티브 카니발 구조로 설계됐다. 네버모어 아카데미 축제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해독하기 위해, 이용자는 ‘Thing’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단서를 교환하고, 생물학 실험실·웨룩스동(寢室) 등 시리즈 속 주요 공간을 탐사한다. 두 콘텐츠 모두 사전 예약이 필요하며 39달러부터 시작하는 프리미엄 체험으로 제공된다.
넷플릭스는 이 두 타이틀이 “세계관 몰입도·비주얼 완성도·팬덤 규모” 세 요소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1호 상설 라인업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시청 데이터와 팬덤 분석이 콘텐츠 선정 과정에 직접 반영됐다는 것이다.
첫 도시는 왜 필라델피아였나… 넷플릭스의 지역별 ‘팬덤 데이터 전략’
필라델피아가 뉴욕이나 LA보다 먼저 선정된 점도 흥미롭다. 넷플릭스는 도시별 스트리밍 시청 데이터, 쇼핑몰 유동 인구, 교외 접근성, 지역별 IP 팬덤 비중 등을 교차 분석해 최적의 첫 지점을 선정했다.
킹 오브 프러시아 몰(King of Prussia Mall)은 미국 동부 최대 규모 쇼핑몰로, 도심과 교외를 모두 커버하는 교통망과 다양한 방문객 구성을 갖추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 지점을 “목적지(destination)가 아니라 생활권 기반(experience in daily life) 공간”으로 설계하고자 했다.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쇼핑을 하거나 식사하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넷플릭스 경험에 진입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디즈니나 유니버설처럼 비행기를 타고 방문하는 ‘목적형 테마파크’ 구조와는 차별화된다.
또한 넷플릭스는 지역별 시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필라델피아 이용자들이 원피스·웬즈데이·기묘한 이야기·굿걸스 등 특정 장르에 유난히 높은 몰입도를 보인다는 점도 반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지점에는 이 지역 전용 굿즈가 출시됐고, 특정 IP의 인기가 높아질 경우 몇 주 만에 콘텐츠 일부를 교체하는 대응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무료 입장, 체험 과금… ‘소액 반복 소비’ 전략
넷플릭스 하우스의 수익 구조는 전통적 테마파크와 다르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개별 체험에는 과금이 붙는 방식이다. 미니골프는 15달러, VR 콘텐츠는 25달러, 주요 인터랙티브 프로그램은 39달러부터 시작한다.
이 방식은 두 가지 전략적 장점이 있다.
첫째, OTT 주 이용층인 10~30대가 선호하는 ‘소액 반복 소비’를 기반으로 안정적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입장 장벽이 낮아져 팬덤 외 일반 대중의 유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니골프·식당·굿즈샵·VR 등 여러 동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된 점 역시 매출 전환율을 높이려는 구조로 풀이된다. 내부 인테리어의 80%는 모듈형으로 구성돼 있어, 신작 공개나 특정 IP의 급부상 시 빠르게 콘텐츠를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KPop Demon Hunters’가 예상치 못한 흥행에 성공하자 개장 직전에 관련 조형물과 상품을 추가한 것이 그 대표 사례다.
넷플릭스 하우스, 미국 3개 도시로 확장
필라델피아는 시작일 뿐이다. 넷플릭스는 12월 텍사스 댈러스에 두 번째 지점을 오픈하고, 2027년 라스베이거스에 대규모 세 번째 지점을 개장할 계획이다. 댈러스 지점에는 ‘오징어게임’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새롭게 도입되는데, 이는 미국 내 한국 콘텐츠 팬덤의 확장성을 확인한 결정으로 보인다.
라스베이거스 지점은 엔터테인먼트 중심 도시라는 특성을 반영해 가장 큰 규모의 몰입형 공간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오프라인 사업을 ‘세 번째 성장 축’으로 육성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는 테마파크 기업이 되려는 것인가
업계에서는 넷플릭스 하우스를 두고 “넷플릭스가 테마파크 시장에 진입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됐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전략적 성격은 유사하다.
다만 넷플릭스는 디즈니처럼 ‘대규모 단일 테마파크 건설’이 아닌, ‘전 세계에 다수의 중형 상설 체험 공간을 분산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차별성을 갖는다.
ㅇ 데이터 기반 교체형 콘텐츠: OTT 실시간 시청 데이터가 오프라인 콘텐츠 교체에 바로 반영
ㅇ IP 수명주기 극대화: 스트리밍 → 체험 → 굿즈 → 재방문이 연결됨
이 모델은 테마파크·쇼핑몰·인터랙티브 콘텐츠·레스토랑·리테일을 결합한 구조로,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IP 생태계 확장 전략’의 중심에 자리한다.
NEXT 넷플릭스, 다음 스테이지
필라델피아 넷플릭스 하우스는 넷플릭스의 실험이자 동시에 넷플릭스 다음 행보에 대한 선언이다. 스트리밍 경쟁이 포화된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새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IP 가치를 극대화하고, 팬덤의 감정적 충성도를 강화하며, 디즈니·유니버설이 장악해온 체험형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새로운 틈새를 확보하려는 시도다.
넷플릭스 하우스는 아직 완성된 모델이 아니지만, 이 첫 발걸음이 OTT 기업의 비즈니스 확장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그리고 IP 중심 기업 간 경쟁 구도를 어떻게 재편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