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QVC, 결국 파산 보호 신청…TV 홈쇼핑 시대의 종말이 시작됐다
미국 대표 TV 홈쇼핑 기업 QVC 그룹이 결국 파산 보호 절차에 들어갔다. 한때 ‘TV를 틀면 물건을 산다’는 소비 문화를 만들어낸 QVC지만, 미디어 기반 커머스 모델에서 온라인 기반 커머스로 급격히 전환되면서 기존 사업 구조가 흔들린 결과다.
케이블 TV 중심의 유통 채널이 붕괴되고 모바일·소셜·스트리밍 기반 소비가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QVC의 위기는 단순한 기업 부실을 넘어 전통 홈쇼핑 산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챕터11 신청…부채 66억 달러에서 13억 달러로 축소
QVC 그룹은 4월 1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남부 연방법원에 챕터11을 신청했다. 채권단과 사전 합의한 구조조정을 통해 약 66억 달러(약 9조6,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13억 달러(약 1조9,000억 원)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절차는 ‘프리패키지’ 방식으로 진행되며 약 90일 내 종료를 목표로 한다. 회사는 파산 과정에서도 모든 채널과 플랫폼에서 정상 영업을 지속하고, 직원 급여와 협력사 대금도 차질 없이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회사가 법원 보호 아래 들어가면 채권자들의 강제 추심이 일시 중단되고, 그 사이에 부채를 줄이거나 상환 조건을 바꾸는 구조조정 계획을 만든다
이 계획은 채권자와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승인되면 기업은 재무 구조를 개선한 상태로 다시 정상 영업을 이어간다.
케이블 TV 기반 모델의 붕괴…핵심 사업 자체가 흔들렸다
QVC의 위기는 단순히 비용 구조 문제가 아니다. 사업의 기반이었던 케이블 TV 자체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회사는 공식 자료에서 모바일 기기, 소셜 플랫폼, 스트리밍 서비스의 급성장이 영상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케이블 TV는 구조적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
과거 홈쇼핑은 ‘채널을 켜두면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였지만, 이제 소비자는 검색과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능동적으로 상품을 발견한다. 시청과 구매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플랫폼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매출로 드러난 구조 변화…“성장은 멈추고, 이동만 일어났다”
이 같은 변화는 매출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QVC와 HSN을 포함한 핵심 사업(QxH 기준)은 2020년 약 85억 달러(약 12조4,000억 원)에서 2025년 59억 달러(약 8조6,000억 원)로 감소하며 약 30% 이상 축소됐다.
팬데믹 시기 유지됐던 수요가 이후 빠르게 이탈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디지털 매출 비중은 60% 수준에서 66% 이상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소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TV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에도 불구하고 전체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채널 이동만으로는 성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로 시장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 연도 | 미국 QVC·HSN(QxH) 매출 | 디지털 매출 비중 | QVC 전체 매출(미국+국제) |
|---|---|---|---|
| 2020 | 85억 달러 | 59.8% | 약 115억 달러 |
| 2021 | 83억 달러 | 60.4% | 약 114억 달러 |
| 2022 | 74억 달러 | 60.5% | 약 99억 달러 |
| 2023 | 70억 달러 | 61.8% | 약 95억 달러 |
| 2024 | 66억 달러 | 63.9% | 약 90억 달러 |
| 2025 | 59억 달러 | 66.9% | 약 83억 달러 |
| (SEC) |
라이브 커머스로 전환…하지만 경쟁자는 ‘플랫폼’
QVC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라이브 소셜 쇼핑’ 전략을 추진해왔다. 실제로 2025년 틱톡샵을 통해 약 100만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했고, 스트리밍 서비스(QVC+, HSN+)의 월간 이용자도 150만 명 수준까지 늘었다.
문제는 경쟁 환경이다. 과거에는 방송 채널을 확보한 사업자만 홈쇼핑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틱톡·유튜브·인스타그램 등 플랫폼 자체가 곧 쇼핑 채널이다. 이 구조에서는 QVC가 ‘채널 사업자’로서 갖고 있던 진입 장벽이 사실상 사라진다. 경쟁 상대가 기존 홈쇼핑 업체가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으로 확장된 셈이다.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전환의 비용도 현실화
QVC는 이미 2025년 약 900명을 감원하고 QVC와 HSN 조직을 통합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는 전체 인력의 약 5% 수준이다.
QVC와 HSN은 원래 별도의 TV 홈쇼핑 기업이었지만, 2017년 약 21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주식 교환 방식으로 HSN을 편입해 현재는 같은 그룹에 속한 브랜드다.
이 같은 조치는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보여준다. 방송 중심 조직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인력 구조와 운영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TV 커머스’에서 ‘플랫폼 커머스’로…산업의 축이 이동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보다 소비 구조의 변화다. 소비자는 더 이상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다. 대신 언제든지 접속 가능한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쇼핑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용자는 필요할 때 플랫폼에 접속해 상품을 탐색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매로 이어진다.
또한 커머스는 단순 판매가 아니라 콘텐츠 경험으로 진화했다. 인플루언서, 숏폼 영상, 실시간 소통이 결합되면서 ‘상품 설명 중심’이었던 기존 홈쇼핑 콘텐츠는 경쟁력을 잃고 있다.
결국 QVC가 직면한 위기는 특정 기업의 실패라기보다, 케이블 TV 시대에 최적화된 커머스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에 가깝다.
재출발 선언…“라이브 소셜 쇼핑 기업으로 전환”
QVC는 구조조정을 마친 이후 ‘재편된 QVC(Reorganized QVC)’로 재출발하며 라이브 소셜 쇼핑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이미 틱톡, 스트리밍, 디지털 플랫폼에서 초기 성과를 확보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 전략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장의 시선은 여전히 신중하다. QVC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재무 구조가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이기 때문이다.채널 중심에서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한 커머스 시장에서, 기존 홈쇼핑 사업자가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재구축할 수 있을지에 따라 향후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