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WBD 인수로 퀀텀 점프...최고의 플랫폼이 헐리우드 100년 스튜디오 인수

스트리밍 1위, 헐리우드 ‘100년 스튜디오’를 삼키다

(출처 : https://about.netflix.com)

넷플릭스가 마침내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를 품에 안는다. 넷플릭스와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는 5일(미국 현지시간) 넷플릭스가 워너 브라더스 영화·TV 스튜디오와 HBO·HBO 맥스(HBO Max)를 인수하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거래 규모는 순현금·부채를 반영한 기업가치 기준 약 827억달러(약 121조원), 지분가치 기준 720억달러(약 105조원)에 달한다. WBD 주주들은 현금($23.25)과 넷플릭스 주식($4.5)을 합쳐 주당 27.75달러를 받게 된다.

이번 인수는 WBD가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을 떼어내 ‘디스커버리 글로벌(Discovery Global)’이라는 별도 상장 회사로 분할한 이후 마무리된다. WBD는 올해 6월 스튜디오·스트리밍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둘로 쪼개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고, 네트워크 부문 분리는 2026년 3분기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WBD는 분할 이후 12~18개월 안에 인수 절차를 종결한다는 방침이다. 넷플릭스는 ‘프로젝트 노블(Project Noble)’이라는 이름 아래 약 590억 달러(약 8조 6,700억 원)규모의 인수 금융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전 세계 스트리밍 1위 플랫폼과 헐리우드의 대표적 ‘100년 스튜디오’가 한 지붕 아래 들어가는 초대형 메가딜이 된다.

워너 브라더스+HBO, 넷플릭스 IP·스튜디오 역량을 한 번에 확장

거래의 핵심은 넷플릭스가 단순히 라이브러리를 사오는 수준을 넘어,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와 HBO·HBO 맥스를 통째로 품는다는 점이다. 인수 대상에는 워너 브라더스 TV·영화 스튜디오, DC 스튜디오, HBO, HBO 맥스와 이들의 방대한 영화·시리즈 라이브러리가 모두 포함된다. 반면 CNN, TNT 스포츠, 디스커버리 채널, 유럽 주요 지상파 채널, 디스커버리+와 블리처 리포트(Bleacher Report) 등 글로벌 네트워크 사업은 디스커버리 글로벌에 남는다.

이에 따라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 ‘소프라노스(The Sopranos)’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프렌즈(Friends)’ ‘해리 포터(Harry Potter)’ ‘DC 유니버스’ 등 워너 브라더스의 대표 IP와, ‘스트레인저 씽스(Stranger Things)’ ‘오징어 게임(Squid Game)’ ‘종이의 집(Money Heist)’ ‘브리저튼(Bridgerton)’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히트작이 하나의 기업 포트폴리오 안에 묶이게 된다.

워너 브라더스의 최고의 IP 콘텐츠

테드 사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는 “워너 브라더스의 카사블랑카, 시민 케인부터 해리 포터, 프렌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넷플릭스의 스트레인저 씽스와 K팝 디먼 헌터즈,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두 회사가 함께 다음 세기의 스토리텔링을 정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레그 피터스 공동 CEO 역시 “워너 브라더스는 100년 넘게 엔터테인먼트를 정의해온 스튜디오”라며 “넷플릭스의 글로벌 도달 범위와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이 세계관을 더 넓은 시청자에게 소개하고, 산업 전체의 저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HBO·HBO 맥스는 넷플릭스 안의 ‘프리미엄 계층’

넷플릭스는 HBO·HBO MAX(맥스)를 별도 경쟁 서비스라기보다, 넷플릭스 안에 편입되는 프리미엄 레이어(Layer)로 포지셔닝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브랜드와 요금제 구조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다층 구조 요금제 안에 HBO의 프레스티지 드라마를 통합하고, 넷플릭스와 HBO 라이브러리의 번들·윈도우 전략을 재편하겠다는 신호를 이미 여러 차례 보내왔다.

HBO는 지난 수십 년간 ‘프레스티지 TV’ 또는 '프리미엄 TV'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브랜드이다. 최근에는 스트리밍 중심 구조로 상당 부분 전환을 마친 상태이기도 하다.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은 HBO의 글로벌 가입자 가운데 10~15%만이 기존 유료TV 패키지를 통해 가입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넷플릭스 입장에서 레거시 TV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로 3년 차부터 연간 20억~30억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거래 완료 2년 차부터는 희석 전 주당순이익(EPS)에 플러스 효과를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HBO Max is launching in more European territories
(출처 : HBO)

디스커버리 글로벌로 남는 CNN·스포츠·뉴스…‘두 회사’로 쪼개지는 WBD

이번 거래의 또 다른 축은 WBD 내부의 구조 개편이다. 넷플릭스는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자산에만 집중했고, CNN과 스포츠·뉴스 채널,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는 별도 회사 디스커버리 글로벌로 남긴다. 디스커버리 글로벌은 CNN, TNT 스포츠, 디스커버리 브랜드 채널, 유럽의 주요 지상파, HGTV, 디스커버리+와 스포츠·뉴스 디지털 자산 등을 묶은 전통 유료TV·케이블 중심 포트폴리오가 된다. WBD의 현 최고재무책임자(CFO) 군나 비덴펠스가 이 회사의 CEO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조는 넷플릭스가 레거시 채널 사업의 구조적 역풍을 떠안지 않고,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와 HBO·HBO 맥스 등 ‘콘텐츠·IP·스트리밍 코어’만 흡수하는 모델이다. 동시에 디스커버리 글로벌은 향후 다른 미디어 그룹과의 추가 합종연횡을 염두에 둔 독립 플랫폼으로 남게 된다.

스트리밍 전쟁 ‘최종 승자’의 퀀텀 점프…IP·극장 배급까지 손에 넣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스트리밍 전쟁의 최종 승자로 불려온 넷플릭스가 IP와 물리적 스튜디오 역량까지 한 번에 확보하는 퀀텀 점프”로 평가한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대형 인수합병 대신 자체 제작·오리지널 IP 구축에 집중해 왔지만, 최근 몇 년간 미드사이즈 전통 스튜디오들이 넷플릭스나 빅테크와의 단위경제 경쟁에서 밀리는 구조가 명확해지면서, “이제는 인수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시각이 부상해 왔다.

분석가들은 특히 DC 코믹스, 해리 포터, 로드 오브 더 링, 한나-바베라 등 WBD가 보유하거나 독점권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넷플릭스의 결정적 매력 포인트였다고 본다. 이들 IP는 영화·드라마뿐 아니라 테마파크, 라이브 경험, 브로드웨이, 게임, 머천다이징 등으로 확장 가능한 ‘멀티 유즈’ 자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워너 브라더스가 보유한 글로벌 극장 배급망과 물리적 스튜디오 인프라는 넷플릭스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던 오프라인·극장 쪽 존재감을 단숨에 보완해 줄 수 있다.

다만 넷플릭스는 “워너 브라더스의 극장 개봉 계획을 존중하고, 영화의 극장 상영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자사 핵심이 여전히 구독형 스트리밍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넷플릭스는 지금까지 17일 안팎의 짧은 극장 독점 기간을 선호해 왔고, 45일 이상을 요구해 온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와는 줄곧 충돌해 왔다. 이번 인수 이후 극장 윈도우를 둘러싼 협상 전선이 어떻게 재편될지도 업계의 관심사다.

“독점·극장 붕괴” 우려…규제 심사 최대 변수

거래 발표 직후 미국 극장 업계와 창작자 단체 일부는 즉각적인 우려를 제기했다. 극장 업계 단체인 시네마 유나이티드(Cinema United)는 성명을 통해 “넷플릭스의 워너 브라더스 인수는 글로벌 극장 비즈니스에 전례 없는 위협”이라며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극장 상영 확대와 정반대 방향에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감독조합(DGA)도 “콘텐츠 집중과 창작 생태계 위축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했다.

규제 당국의 심사도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파라마운트와 컴캐스트(NBC유니버설 모회사) 역시 WBD 인수를 시도했지만, 파라마운트는 “넷플릭스와 컴캐스트의 제안은 규제 당국이 무시하기 어려운 경쟁 제한 이슈를 안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미 글로벌 스트리밍 1위인 넷플릭스가 HBO 맥스와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까지 흡수할 경우, 프리미엄 시리즈·블록버스터 영화 시장에서의 지배력 강화와 경쟁사 퇴출 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계약에는 거래 무산 시 넷플릭스가 WBD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파기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WBD 입장에서는 인수를 성사시키든, 규제로 무산되더라도 막대한 현금을 확보하는 구조라 ‘질 수 없는 게임’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 분기점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로 가입자·매출·콘텐츠 투자에서 이미 앞서가던 스트리밍 지위를 공고히 할 뿐 아니라, 헐리우드 핵심 스튜디오와 프랜차이즈를 통합한 ‘슈퍼 스튜디오’로 변신하게 된다. WBD는 스튜디오·스트리밍을 넷플릭스에 넘기고, CNN·스포츠·엔터테인먼트 채널을 축으로 한 디스커버리 글로벌로 재편되면서 또 다른 구조조정을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번 거래는 “중견 레거시 미디어 회사가 넷플릭스나 빅테크와 단독으로 맞붙기 어려운 2025년 미디어 환경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와 NBC유니버설·피콕 등 남은 플레이어들의 추가 재편을 촉발할 촉매제로도 주목받고 있다. 스트리밍 전쟁의 ‘1차전’이 가입자 경쟁이었다면, 넷플릭스의 워너 브라더스 인수는 IP·스튜디오·극장을 아우르는 ‘2차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규제 기관의 승인과 극장·창작자 커뮤니티의 신뢰 회복이다. 거대 플랫폼과 100년 스튜디오의 결합이 진정으로 “더 많은 선택과 더 큰 가치”를 가져올지, 아니면 시장 집중과 다양성 축소로 귀결될지는, 앞으로 수년간 글로벌 미디어 산업이 지켜볼 가장 큰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