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다시 채운 Hall H…코믹콘 2026, 팬덤이 극장·스트리밍 전략을 결정하다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가 25일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San Diego Comic-Con 2026)에서 영화 ‘어벤져스: 둠스데이(Avengers: Doomsday)’의 새로운 영상을 공개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가 연기하는 닥터 둠(Doctor Doom)과 페드로 파스칼(Pedro Pascal)의 리드 리처즈(Reed Richards)가 정면으로 맞서는 장면이 처음 소개됐다.
마블의 홀 H(Hall H) 복귀는 올해 코믹콘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극장 영화와 스트리밍 시리즈, 장난감과 게임으로 나뉘어 있던 지식재산권(IP)이 하나의 팬덤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TV(Apple TV)가 처음으로 홀 H에 입성하고 넷플릭스(Netflix),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 워너브러더스(Warner Bros.)가 주요 작품을 내놓으면서 코믹콘은 할리우드의 차기 프랜차이즈 전략을 점검하는 무대가 됐다.
12만 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급 팝컬처 행사
샌디에이고 코믹콘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출발해 영화와 TV, 스트리밍, 게임, 출판, 완구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급 대중문화 행사로 성장했다. 1970년 처음 개최됐으며, 최근에는 매년 약 13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 콘텐츠 기업과 창작자, 배우, 팬이 한 공간에 모여 신작과 차기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거대한 지식재산권(IP) 시장이다.
2026년 행사는 7월 22일 프리뷰 나이트(Preview Night)를 시작으로 23일부터 26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행사장에서는 영화와 드라마의 독점 영상 공개뿐 아니라 배우·제작진 패널, 만화가와 팬의 만남, 게임 시연, 애니메이션 상영, 코스튬 행사, 한정판 상품 판매 등이 함께 진행됐다.
특히 약 6,500명을 수용하는 최대 행사장 ‘홀 H(Hall H)’는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가 대형 프랜차이즈를 발표하는 핵심 무대이다. 기업들은 정식 예고편보다 앞서 독점 영상을 공개하고 배우를 무대에 올려 팬들의 반응을 확인한다. 이곳에서 발생한 관심과 화제성은 영화 예매와 스트리밍 시청, 온라인 확산, 상품 판매로 이어지기 때문에 코믹콘은 팬 행사이면서 동시에 콘텐츠 기업의 사전 시장조사와 마케팅 플랫폼 역할을 한다.
올해는 마블 스튜디오를 비롯해 애플 TV와 넷플릭스, 프라임 비디오, 워너브러더스 등 주요 콘텐츠 기업이 신작과 프랜차이즈 계획을 공개했다.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받은 발표가 마블의 ‘어벤져스: 둠스데이’였다. 마블은 닥터 둠과 판타스틱 포, 엑스맨, 어벤져스를 연결하는 영상을 통해 새로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방향을 제시했다.
닥터 둠이 다시 묶은 마블의 세계관
공개된 영상은 닥터 둠과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의 과거에 초점을 맞췄다. 수 스톰(Sue Storm)은 빅터 본 둠(Victor Von Doom)이 한때 친절하고 타인을 배려했지만 모든 것을 잃은 뒤 무너졌다고 설명한다. 폐허에서 둠을 만난 리드 리처즈가 책임을 묻자 둠은 영웅들이 “훔친 삶(stolen lives)”을 돌려줘야 한다고 경고한다.
“All of you have lived stolen lives. Now you must give them back.” (by Victor Von Doom)
후반부에는 ‘엑스맨(X-Men)’ 시리즈의 센티널(Sentinel) 군단을 이끄는 둠과 딸을 보호하려는 토르(Thor)가 맞선다. 마블은 어벤져스와 판타스틱 포, 엑스맨을 닥터 둠이라는 하나의 적을 중심으로 결합하면서 디즈니의 마블 IP 통합이 실제 영화 서사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코믹콘으로 확산된 프리미엄 극장 경쟁
‘어벤져스: 둠스데이’는 2026년 12월 18일 미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당초 5월 1일에서 연기됐다. 그러나 사전 예매를 시작한 지 24시간 만에 1,650만 달러(약 241억 원)를 기록했다. 이번 사전 예매 판매 대상은 디즈니와 마블이 추진하는 ‘인피니티 비전(Infinity Vision)’ 캠페인의 프리미엄 상영관 약 1,000개로 제한됐다. 그만큼 팬들의 지지를 받는 영화이자 IP인 셈이다.
ㅇ 순수 제작비: 약 4억 달러(약 5,800억 원)
ㅇ 글로벌 마케팅비: 약 3억 달러(약 4,400억 원)
ㅇ 마케팅을 포함한 총투입액: 약 7억 달러(약 1조200억 원)
같은 개봉일인 워너브러더스의 ‘듄: 파트 3(Dune: Part Three)’가 아이맥스(IMAX) 상영관을 선점하면서 마블은 아이맥스 이외의 대형 프리미엄 상영관을 별도 브랜드로 묶는 전략을 선택했다.
코믹콘에서 독점 영상을 공개해 팬의 기대를 높이고, 그 관심을 고가 티켓 예매로 연결하는 구조이다. 작품 홍보와 극장 포맷 전략, 사전 매출 확보가 하나의 캠페인으로 설계되고 있다.
애플 TV까지 들어온 Hall H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애플 TV의 첫 Hall H 참여이다. 애플은 ‘매치박스 더 무비(Matchbox The Movie)’, ‘다크 매터(Dark Matter)’, ‘메이데이(Mayday)’, ‘사일로(Silo)’, ‘위도스 베이(Widow’s Bay)’를 묶어 약 2시간 동안 소개했다. 프라임 비디오는 ‘블레이드 러너 2099(Blade Runner 2099)’와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The Lord of the Rings: The Rings of Power)’, ‘스페이스볼(Spaceballs)’을 전면에 내세웠다.
넷플릭스는 브래드 버드(Brad Bird) 감독의 애니메이션 ‘레이 건(Ray Gunn)’을 공개했고, HBO는 DC 스튜디오의 ‘랜턴스(Lanterns)’를 소개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코믹콘을 가입자 모집을 위한 신작 발표회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장기간 시리즈를 지지할 핵심 팬을 확보하고 영화·드라마·게임·상품으로 이어지는 IP 생태계를 구축하는 접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K팝과 웹툰을 결합한 한국형 IP도 참여
한국 콘텐츠의 참여 방식도 달라졌다. 하이브의 그룹 엔하이픈(ENHYPEN)은 영화 ‘트와일라잇’의 캐서린 하드윅 감독과 배우 피터 파시넬리, 애슐리 그린이 참여한 뱀파이어 스토리텔링 패널에 등장했다. 행사장에는 엔하이픈을 기반으로 만든 하이브의 웹툰·애니메이션 IP ‘다크 문(Dark Moon)’ 전용 부스도 마련됐다.
이는 한국 콘텐츠가 완성된 영화나 드라마를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K팝 아티스트와 웹툰, 애니메이션, 공연, 캐릭터 상품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마블과 DC가 코믹콘에서 구축해 온 프랜차이즈 전략을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도 K팝을 중심으로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팬덤의 반응이 콘텐츠 투자를 결정한다
올해 코믹콘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창작자의 개성도 함께 강조됐다.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는 ‘판의 미로(Pan’s Labyrinth)’ 20주년을 맞아 3D·4K 재개봉을 알리는 한편 영화 제작에서 생성형 AI에 의존하는 흐름을 비판했다. 브래드 버드는 오랜 기간 개발해 온 ‘레이 건’을 통해 감독 중심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샌디에이고 코믹콘 2026은 팬 행사가 콘텐츠 산업의 판매·유통 전략과 직접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어떤 배우가 등장하고 어떤 장면에 환호가 쏟아지는지가 극장 예매와 스트리밍 편성, 후속작 투자로 이어진다. 한국 콘텐츠 기업에도 필요한 것은 작품 공개 이후의 홍보만이 아니다. 제작 초기부터 팬을 모으고, 현장 반응을 데이터로 축적하며, 하나의 작품을 극장·OTT·게임·상품으로 확장하는 장기적인 팬덤 설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