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독립제작사 10곳 중 4곳 폐업 위험…BBC 공영방송 제작 축소가 흔드는 제작 생태계

영국 소형 독립 TV 제작사 10곳 중 4곳이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년 안에 폐업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독립제작사 지원업체 인디랩(Indielab)이 소형 제작사 203곳의 최근 3년 재무자료를 분석한 결과 40%(83곳)는 기업이 손실이나 매출 감소를 버틸 수 있는 재무적 완충 역할을 하는 보유잉여금(reserves)이 30% 이상 감소했다. 전체 31%(63곳)는 절반 이상 보유잉여금이 줄었으며, 소형 제작사의 보유잉여금 중앙값은 4만 2,000파운드(약 7,650만원)에 불과했다.

넷플릭스(Netflix),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 디즈니+(Disney+) 등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가 영국 제작시장에 진출했지만, 독립제작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발주처는 여전히 BBC·ITV·Channel 4·5 등 공공서비스방송(Public Service Broadcasters·PSB)이다.

올리버앤올바움(Oliver & Ohlbaum·O&O)이 작성한 보고서 「공공서비스방송과 콘텐츠 제작 생태계: 무엇이 위게 놓여 있는가?(PSBs and the Production Pipeline: What’s at Stake?)」에 따르면 2024년 영국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액 39억파운드 가운데 71%인 27억8,000만파운드(약 5조638억원)가 PSB에서 나왔다.

PSB를 제외한 방송사와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의 투자액을 모두 합쳐도 11억파운드(약 2조37억원)에 그쳤다.

영국 오리지널 제작시간 85%가 PSB 발주

제작시간으로 보면 PSB의 비중은 투자액보다 더 크다. 2025년 영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시간의 85%가 PSB 발주였다. BBC·ITV·Channel 4·5 등 전국 네트워크 PSB가 53%, 지역 PSB가 32%를 차지했다. 넷플릭스·프라임 비디오·디즈니+ 등 구독형 스트리밍(SVOD)과 멀티채널 방송을 합친 비중은 15%였다.

(* 뉴스와 스포츠는 제외한 수치이며, SVOD는 자료 가용성 때문에 2024년 제작 데이터를 사용)

영국 공영서비스의 오리지널 제작시간 점유율
(출처 : Oliver & Ohlbaum Associates, PSBs and the Production Pipeline: What’s at Stake?, Everyone TV, 2026)

영국 방송사의 선형TV 시청시간은 감소하고 있지만 방송사 주문형비디오(BVoD) 이용은 늘고 있다. 시청 방식이 선형TV에서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더라도 BBC와 ITV 등 기존 방송사가 영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주하는 핵심 사업자라는 구조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특히 소형 제작사의 PSB 의존도가 높다. 2025년 PSB로부터 프로그램을 발주받은 독립제작 그룹은 235개였으며 이 가운데 76%가 소형 제작사였다. PSB가 소형·마이크로 제작사에 투자한 금액은 약 3억6,500만파운드(약 6,649억원)에 달했다. 영국 TV 제작사 전체 매출에서도 PSB의 1차 제작비(primary commissioning fees)가 약 40%를 차지해 가장 큰 단일 수입원이었다.

10년간 신생 제작사 602곳 발굴

PSB는 기존 제작사의 매출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제작사가 시장에 진입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 PSB가 프로그램을 발주한 신규 진입 독립제작 레이블은 602곳이다.

2025년, PSB가 발주한 독립제작사 가운데 27%는 설립 5년 미만이었으며, 이들에 약 1억5,500만파운드(약 2,823억원)가 투자됐다. 이 가운데 처음 PSB 발주를 받은 신생 제작사에 투입된 금액도 약 3,000만파운드(약 546억원)에 달했다.

PSB에서 시작한 제작사 가운데 글로벌 시장으로 성장한 사례도 적지 않다. 2016~2025년 PSB에서 첫 번째 또는 초기 발주를 받은 제작사 가운데 79곳은 현재 연매출 1,000만파운드(약 182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이들 신생 제작사가 PSB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와 스트리밍 사업자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2021~2025년 전체 발주시장에서 창출한 누적 매출은 약 31억파운드(약 5조6,468억원)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히트작 ‘Adolescence(청소년기)’도 이런 제작 생태계와 연결돼 있다. O&O는 작품의 배우와 작가·감독 등 주요 인력이 BBC와 Channel 4 등 PSB 프로그램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점을 사례로 제시했다. 제작사 워프필름스(Warp Films) 역시 Channel 4 발주와 제작사 지원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가 영국에서 활용하는 제작사와 인력이 기존 PSB 제작 생태계와 분리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

넷플릭스 영국 오리지널 시리즈 '청소년기(Adolescence)'
(출처: Netflix)

소형 제작사부터 재무 여력 빠르게 감소

이 같은 구조에서 PSB 발주 감소는 자금 여력이 작은 제작사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디랩 조사 대상 203곳 가운데 83곳(40%)은 최근 3년간 보유잉여금(reserves)이 30% 이상 감소했고 63곳(31%)은 절반 이상 줄었다. 제작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발주 자체가 줄어들면 고정비를 감당할 현금과 재무 여력이 부족한 소형 제작사가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제작사가 같은 상황은 아니다. 조사 대상 가운데 85곳(42%)은 같은 기간 보유잉여금이 증가했다. 인디랩은 방송사 한 곳의 발주에 의존하지 않고 공동제작과 해외판매 등으로 수익원을 다양화한 제작사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회복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영국 제작산업 전체가 동시에 위축되고 있다기보다 발주 감소를 견딜 재무 여력이 작은 제작사에 위험이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New ITV drama Code of a Killer
(출처 : hincleytimes.net)

PSB도 광고·수신료 감소로 투자 여력 약화

그러나 독립제작사의 버팀목인 PSB 역시 투자 여력이 약해지고 있다. 상업 PSB의 선형TV 광고매출은 2025년 22억파운드(약 4조74억원)로 전년보다 13% 감소했다. BBC 수신료 수입은 현행 왕실헌장(Charter)이 시작된 2016년과 비교하면 실질가치 기준 약 12억파운드(약 2조1,858억원) 줄었다. TV 수신료를 납부하는 가구 비율도 2016/17년 90% 이상에서 2025/26년 80%로 낮아졌다.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도 외부 자금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PSB 네트워크 채널 제작비 가운데 방송사가 직접 부담하는 비중은 2021년 83%에서 2025년 74%로 낮아진 반면, 공동제작·갭 파이낸싱·세액공제 등 제3자 재원 비중은 같은 기간 17%에서 26%로 상승했다. 방송사가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더 많은 외부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BBC Headquarters Broadcasting House, Langham Place, London.
(출처 : Peter Lane/ Alamy)

2034년 IPTV 전환도 PSB 생존전략

영국 정부도 PSB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송 유통체계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는 2026년 녹서 「Watch This Space」를 통해 지상파 디지털TV(DTT)의 미래와 IPTV 전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PSB는 DTT 송출에 연간 약 1억5,600만파운드(약 2,842억원)를 지출하면서 BBC iPlayer와 ITVX 등 IP 기반 서비스에도 동시에 투자하고 있다.

DTT 라이선스는 2034년까지 보장돼 있다. O&O는 이후 IPTV 중심으로 관리된 전환을 추진하면 지상파와 IP망을 동시에 유지하는 중복 유통비용을 줄이고 이를 콘텐츠와 디지털 서비스에 다시 투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여전히 DTT에 의존하는 가구가 존재하는 만큼 보편적 시청권과 디지털 소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O&O는 PSB 발주가 줄어들 경우 신규 제작사의 첫 작품 발주 감소에서 시작해 지역 제작과 인력양성 약화, IP와 수익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지는 ‘하락의 악순환(spiral of decline)’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를 의뢰한 Everyone TV가 BBC·ITV·Channel 4·5가 공동 소유한 기관이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인디랩의 제작사 재무분석에서도 소형 제작사의 재무 여력이 실제로 빠르게 줄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영국 투자가 늘어난다고 BBC와 ITV의 역할이 사라지는 구조는 아니다. PSB가 신생 제작사와 새로운 IP를 발굴하고 제작 인력과 지역 제작기반을 키우면, 글로벌 스트리밍 사업자는 그 위에서 성장한 제작사와 인력·콘텐츠를 활용한다. 영국이 직면한 문제는 전통 방송 몇 곳의 경영난이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을 만들어 온 제작 파이프라인의 출발점이 약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ARTE, 프랑스·독일 넘어 유럽 전체로…‘범유럽 공영 스트리밍’으로 확장
아르떼(ARTE)가 현재 7개인 스트리밍 지원 언어를 향후 수년에 걸쳐 최소 24개로 확대하며 프랑스·독일 중심의 공영방송에서 범유럽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힌다.이미 유럽 월간 9,100만명에 도달하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14개 공영방송 파트너를 기반으로, EU 지원을 활용해 유럽 전체를 하나의 시청권역으로 연결하는 전략이다.
(프리미엄 보고서) 2026 2분기 글로벌 미디어기업 변화와 전망 분석
2Q 2026 글로벌미디어기업 실적 종합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