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가 마침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2025년 7월 2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형 통신 기업 AT&T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위성 방송 서비스 ‘디렉TV(DIRECTV)’의 잔여 지분 70%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TPG에 매각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미디어·콘텐츠 관련 사업에서 완전 철수했다. 이는 2015년 디렉TV 인수 이후 약 10년에 걸친 '미디어 실험'의 공식적인 종지부이자, AT&T의 새로운 전략 전환을 선언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실패한 콘텐츠 꿈”…디렉TV 인수에서 철수까지의 10년
AT&T는 2015년 디렉TV를 490억 달러(약 71조 원, 부채 포함 총 67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통신망과 콘텐츠의 시너지를 노린 ‘통신-미디어 융합’ 전략을 본격 추진했다. 2018년에는 타임워너(현 WBD)까지 인수하면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유료TV 가입자 기반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스트리밍 대세에 밀려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AT&T는 디렉TV의 지분 30%를 TPG에 매각하며 첫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같은 해 타임워너를 디스커버리와 합병시켰다. 이번 잔여 70% 매각은 그 마지막 정리 수순이었다.
2021년 당시 디렉TV의 가치는 162억 5,000만 달러(약 23조 5,000억 원)로 평가됐지만, 이는 2015년 인수금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디렉TV 인수는 통신 기업이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겠다는 전략의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 사례가 되었다.
TPG의 전략적 인수…스트리밍 강화에 나선 디렉TV
TPG는 2021년 이후 디렉TV 지분 30%를 보유하며 이미 공동운영에 참여해 왔고, 이번 지분 인수로 디렉TV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TPG는 자산운용 규모만 2,580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사모펀드로, 디지털 미디어·통신 분야에 활발히 투자해 왔다. TPG는 디렉TV가 “다양한 콘텐츠 포트폴리오와 차별화된 영상 서비스를 보유한 혁신적 기업”이라며 “스트리밍 중심의 차세대 영상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1. 엔터테인먼트/미디어
- 디렉TV(DirecTV) – 2021년 30% 지분 인수 후, 2025년 7월 70% 지분 추가 인수 → 100% 소유
- 할리우드 에이전시 CAA(Creative Artists Agency)
- Univision Communications (히스패닉 미디어 그룹)
2. 기술·소비재 회사
- Uber – 초기 투자자로서 큰 수익 실현
- Airbnb – 상장 전 지분 보유
- Spotify, Box – 성장기 투자
3. 헬스케어
- IQVIA, LifeStance Health 등 보건·의료 서비스 기업 투자
디렉TV 역시 기존 위성방송 중심에서 스트리밍 기반의 ‘넥스트제너레이션 서비스’로 사업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현재 수백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디렉TV 스트리밍은 해지율이 낮고 고객 만족도가 높아, TPG의 자금력과 결합할 경우 의미 있는 성장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디렉TV는 과거 디즈니, 파라마운트, 워너 등 다양한 콘텐츠 사업자와 협력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와 결합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AT&T의 미래 방향은 5G와 광통신 중심
AT&T는 이번 거래를 통해 향후 5년간 약 76억 달러(약 11조 원) 수준의 현금 유입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지난 2024년 하반기 17억 달러에 이어, 2025년 54억 달러, 2029년 최종 5억 달러 수준으로 분할 지급된다. AT&T는 이 자금을 기반으로 “미국 최고의 5G 및 광섬유 통신 기업으로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AT&T는 이미 워너미디어 분할 당시부터 통신 본업 회귀 전략을 분명히 해왔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T모바일(T-Mobile)- 버라이즌(Verizon)과 치열한 5G 커버리지 경쟁을 벌이고 있는 AT&T는 홈 인터넷 시장에서도 광통신(FTTH)망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AT&T는 직접 소유를 통해 콘텐츠 사업을 하지 않고, 네트워크 기반의 배급과 플랫폼 연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콘텐츠 보유냐, 플랫폼 강화냐”의 경계선
AT&T 사례는 한국 통신·미디어 업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통신사들 역시 IPTV와 OTT를 통해 콘텐츠 사업에 진출하고 있지만, KT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자체 오리지널 제작보다는 콘텐츠 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히려 통신사들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와의 공동 마케팅이나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자사 브랜드 콘텐츠를 키우기보다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연계를 통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이처럼 국내 통신사들 역시 콘텐츠 사업자라기보다는 점점 더 기술·데이터·광대역망 인프라 기반의 플랫폼 사업자로 정체성을 옮겨가고 있으며, 이는 AT&T의 전략 변화와 유사한 흐름이다.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와 함께 지속적인 자본 투입, 창의적 리스크 감수, 글로벌 유통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에 비해 통신사들은 네트워크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유통, 광고 기반 수익 모델, 커머스·IoT와 연계된 융합 서비스 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AT&T의 실험이 남긴 교훈
AT&T의 디렉TV 매각은 단순한 사업 철수가 아니라, 통신사가 콘텐츠 산업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전환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과거처럼 수직계열화를 통해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려는 방식은 실패했고, 이제는 플랫폼·망·데이터·광고 기술을 연계한 ‘간접 통제’ 전략이 대세가 되고 있다.
한국 역시 OTT와 통신, 기술 기업 간의 융합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콘텐츠 제작에 투자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넘어, 데이터와 네트워크 기반의 유통 역량을 어떻게 콘텐츠 생태계와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 AT&T의 퇴장 이후, 이제는 누가 다음 시대의 콘텐츠-통신 융합 생태계를 이끌 주체가 될지 모두가 주목할 시점이다.